[책마을] 참정권도 없이…日에 남겨진 '특별영주자들'

입력 2023-02-17 18:27   수정 2023-03-19 00:02


일본에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을 통칭하는 말이다. 1945년 약 200만 명에 달하던 이들 중 상당수는 해방 후 본국으로 돌아왔지만 60만 명은 일본에 남았다. 그들은 ‘특별영주자’라는 모호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완전한 외국인도, 완전한 일본인도 아니었다. 차별은 여전했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쉽지 않았다. 참정권도 없었다. 한국과 북한의 갈등 속에 재일 교포들도 민단과 총련으로 나눠 반목했다.

그 가운데 권리 향상을 위한 자이니치들의 투쟁이 있었다. 원자폭탄 피폭 치료를 받을 권리를 위해 싸웠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도 일본에서 변호사가 될 수 있기 위해 싸웠다. <공생을 향하여>는 그 자이니치들의 투쟁사를 그린 책이다. 저자인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86)는 재일 외국인 문제에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온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지식인이다. 책은 마이니치신문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 나카무라 일성(54)이 다나카 교수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다나카 교수가 반세기 동안 직접 참여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자이니치 투쟁사를 시계열 순으로 정리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손진두(1924~2014)는 1944년 가족과 함께 히로시마로 이주했다가 이듬해 피폭당했다. 미쓰야마 후미히데라는 일본 이름까지 갖고 있었지만, 패전 후 일본은 그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등록하지 않자 1951년 그를 한국으로 쫓아버렸다. 1970년 피폭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한 그는 8개월 징역형까지 받게 되고, 그때 다나카 교수의 도움을 받는다.

다나카 교수는 ‘피폭자 건강수첩’이란 제도에 국적 제한이 없다는 걸 발견했지만, 후쿠오카현과 후생노동성은 막무가내로 수첩을 교부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1978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원폭의료법은 피폭에 따른 건강상 장애의 특이성과 중대성으로 인해 그 구제 대상은 내외국인을 구별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는 해외에 거주하는 피폭자도 치료 대상으로 하는 오늘날 피폭자원호법 제정의 근거가 돼 피폭 한국인은 물론 해외에 사는 일본인까지 혜택을 보게 됐다.

재일교포 2세인 박종석(72)도 있다. 아라이 쇼지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1970년 일본 대기업인 히타치소프트웨어 도츠카 공장에 입사했다. 그런데 회사는 뒤늦게 그가 한국인인 걸 알고 채용을 취소했다. 상당히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비슷한 또래 재일교포 사이에서 ‘박군을 둘러싼 모임’이 결성됐고, 한국에선 히타치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소송을 통해 1974년 해고 취소 판결을 받은 그는 2011년 60세로 정년을 맞기까지 계속 히타치에서 일할 수 있었다.

다나카 교수는 박종석 사건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재일 1세대에게 일본은 어쩔 수 없이 건너온 곳이었다. 타향이었다. 2세대는 다르다. 일본이 고향이다. 태어나 자라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다. 현실에 순응한 1세대와 달리 2세대들이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선 이유라고 설명한다.

김경득(1949~2005)도 그랬다. 1972년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한국인인 걸 숨겼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아사히신문 입사가 거부된 후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려면 일본인으로 귀화해야 했다. 그는 버텼다. 소송을 통해 일본 변호사 자격에서 국적 조항을 없앴다. 그렇게 그는 자이니치 1호 변호사가 됐다.

자이니치들의 투쟁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증오와 폭력으로 맞선 투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목적은 ‘공생’이었다. 일본은 그들에게 고향이고, 전복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꿔나갈 대상이었다. 이는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나라에 가서 섞여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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